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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쥘’ 마음 없다더니 교육방송마저 압수수색

등록일 2024년05월21일 09시19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지난 4월30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EBS 본사에 단체 견학을 온 중학생들은 펭수하우스를 둘러보고 오다 로비에서 승강이를 벌이는 사람들을 봤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 지부 노조원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진입하려는 검찰 수사관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1974년 창사, 2000년 공사 설립 이래 처음으로 EBS가 압수수색 당하는 광경이 견학 온 중학생들 앞에 펼쳐졌다.

 

발단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3년 10월26일 〈조선일보〉는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EBS로부터 제출받은 유시춘 이사장의 업무추진비 내역 일부를 공개하며 유 이사장이 ‘지난 5년간 법인카드를 총 773회 썼는데 이 중 78건은 주말에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신고를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지난 3월4일, 유 이사장에 대한 조사 및 처리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인과 공직자를 대상으로 3만원이 넘는 식사를 제공해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위반한 사례가 50여 건, 정육점·반찬가게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사례가 200여 건, 주말과 휴무일에 제주·강원 등 EBS 사옥 근처가 아닌 원거리 지역에서 사용한 사례가 100여 건이라는 내용이었다.

 

권익위는 조사 내용을 EBS 감독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대검찰청에 넘겼다. 4월30일 EBS 사옥 압수수색이 이뤄진 배경이다.

 

유시춘 이사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은 압수수색 영장에 ‘EBS가 자체 감사를 실시했으므로 그 내용을 제출해달라고 했으나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거부해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시사IN〉이 확보한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검찰은 압수 물건 목록에 감사 결과 보고서뿐만 아니라 유 이사장의 다이어리·휴대전화 등 개인 물품도 포함했다. 하지만 판사는 ‘피의자(유 이사장)의 기본권 침해가 크다’며 이를 제외했다.

 

또 검찰은 유 이사장의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지로 신청했으나 판사는 EBS 본사 내 이사장실, 이사회 사무국, 감사실, 재무회계 부서 등으로만 제한했다.

 

결국 압수수색 당일 검찰 조사관 여덟 명이 와서 가져간 자료는 감사 결과 보고서와 유 이사장이 사용한 법인카드 영수증, EBS에서 관리하고 있는 유 이사장의 일정표와 일정과 관련된 내부 보고서뿐이었다.

 

5월7일 〈시사IN〉과 만난 유시춘 이사장은 “검찰이 내게 ‘어떤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니와, 달라고 하면 다 줄 수 있는 자료였다. 이미 감사실과 방통위에 다 제출한 자료다. 굳이 ‘창사 이래 첫 압수수색 단행’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게 하면서 무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유시춘 이사장은 유시민 작가(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누나다. 15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결성식에서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해직됐고, 김대중 정부에서 차관급인 국가인권위원회 초대 상임위원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18년 9월 제7기 EBS 이사장으로 임명됐고 2021년부터는 연임에 들어갔다. 3년 뒤인 오는 9월 임기가 끝날 예정이었는데, 퇴임 6개월을 남기고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의혹이 터진 것이다.

 

유시춘 이사장은 모욕적인 혐의라고 반박한다. 정육점이나 반찬가게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쓴 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출연진이나 제작진이 편하게 식당을 이용하기 어려워 이사장의 개인 집필실로 초대했기 때문이고, 주말이나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찍힌 것은 지역 행사나 워크숍이 끝나고 참가자들과 함께 밥을 먹은 건데 ‘주말에 관광지에서 긁었다’고 발표됐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은 “권익위는 단 한 번도 내게 업무추진비 사용 경위에 대해 묻지 않았으면서 멋대로 ‘불법’ ‘부당’ 단어를 써가며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4월12일 EBS 감사실(감사 최기화)이 “이사장이 사적 용도로 집행한 업무추진비 총 1698만4000원을 회수를 포함해 적의(적절히) 조치할 것”이라는 결과를 내놓자 김유열 EBS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부당하다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유시춘 이사장은 오히려 자신이 이사장으로 온 직후 EBS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한 달 업무추진비 상한이던 120만원을 100만원으로 자진 삭감했다가,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클래스가 활성화돼 적자가 회복된 이후에 복원했다고 말했다.

 

1억원 정도 책정돼 있던 해외연수비도 6년 가까이 재임하면서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월 수신료 2500원 중에 EBS가 받는 돈이 70원(2.8%)이다. 이 비율을 어떻게든 높이고 운영 효율을 올려보고 싶어 전 세계에서 가장 공영방송을 잘 운영한다는 독일의 방송재정수요조사심의위원회(KEF)라는 곳만은 꼭 가서 배워오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못 갔다.”

 

비리 혐의로 공공방송 ‘찍어내기’

 

유시춘 이사장은 이번 의혹 제기를 일종의 ‘수법’이라고 본다. 처음 신고를 받고 조사했던 권익위가 앞서 지난해 8월에는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을, 지난해 11월에는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과 김석환 이사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 의뢰한 적 있기 때문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수법은 교묘하다. 조직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사 혹은 이사장 개인의 부정부패 문제로 몰아가는 방식으로 고립시켜 한 명 한 명 찍어낸다. 그런데 정치 뉴스를 만드는 곳도 아닌 EBS마저, 이사장 한 명의 업무추진비를 이유로 압수수색까지 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EBS 압수수색이 이루어진 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보도를 이유로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라고 비판한 이튿날이었다. 이재명 대표의 말에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을 쥘 방법을 잘 아는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을 ‘쥘’ 생각이 전혀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진심일까? 5월3일에는 EBS 부사장으로 임명된 김성동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첫 출근을 하려 했으나 EBS 노조의 반대에 막혀 발길을 돌렸다.

 

김성동 부사장은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자유’의 가치를 아는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2022년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장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무지개를 보는 설렘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고 있습니다(〈월간조선〉 2022년 6월호)”라고 쓴 적 있다. 박유준 EBS 노조위원장은 “압수수색도 처음이지만 이런 인사가 임원으로 오는 것도 처음”이라며 우려했다.

 

김성동 부사장의 첫 출근이 가로막힌 이날은 세계 언론자유의 날이기도 했다.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지난해 47위에서 62로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RSF는 한국을 ‘좋음’ ‘양호함’ ‘문제 있음’ ‘나쁨’ ‘매우 나쁨’ 가운데 ‘문제 있음’ 그룹으로 분류했다.

류태환 대기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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