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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팜 파탈이 그토록 치명적일까

등록일 2023년11월10일 14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팜 파탈이란
신약성서에는 헤로디아스의 아름다운 딸 살로메(Salome)가 어머니의 사주를 받고 의붓아버지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서의 살로메 이야기는 무수히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귀스타브 모로와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쥘 마스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1891)에서는 더욱 각색되어 살로메가 요한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몸에 반해 헤롯에게 그의 목을 요구하고, 잘린 요한의 목에 입을 맞추기까지 한다. 이처럼, 치명적 매력으로 남성을 파국에 빠뜨리는 여성을 ‘팜 파탈(femme fatale)’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프랑스어로 팜(femme)은 ‘여성’, 파탈(fatale)은 ‘치명적인’을 뜻한다. 동양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미인계(美人計)도 팜 파탈을 이용한 책략이라 하겠다.


성경에는 살로메 외에도, 빼어난 미모로 삼손을 꾀어 그의 머리털에서 괴력이 나온다는 비밀을 알아내고 삼손으로 하여금 머리를 밀게 하여 블레셋에 붙잡히게 한 데릴라(Delilah) 이야기, 아름다운 외모로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환심을 산 뒤 만취한 그의 목을 베어 고대 유대를 구한 과부 유디트(Judith) 이야기 등이 나오는데, 역시 팜 파탈의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빼어난 미인이지만 얼굴을 보는 순간 돌로 변하여 죽게 하는 메두사(Medusa), 절세 미모로 파리스의 눈길을 사로잡아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Helene), 영웅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키르케(Kirke)도 마찬가지다.

 

 

세계사의 팜 파탈
실존했던 여성으로서 팜 파탈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BC 69~BC 30)일 것이다. 그녀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두 영웅인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잇달아 애정을 나누었다.

 

카이사르(BC 100~BC 44)는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점령하고, 그리스 아테네 북쪽 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를 상대로 승리하였으며, 폼페이우스는 패주하여 이집트에 의탁하고자 했으나 그곳에서 암살당했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 점령 후 오히려 폼페이우스의 암살자를 사형에 처하여 환심을 사고, 이집트에 머물면서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연합하여 그녀와 공동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몰아내고, 클레오파트라와 사이에 ‘카이사리온’이라는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로마 귀족들에게 암살당한 후 공개된 그의 유언장에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아들 카이사리온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었다. 카이사르에게 클레오파트라 7세는 그냥 정부(情婦)였을 뿐이며 뛰어난 정치가였던 카이사르는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카이사르의 후계자 지위를 놓고 옥타비아누스와 경쟁하던 안토니우스(BC 83~BC 30)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그리스식 결혼식을 올리고, 그녀가 낳은 두 자식을 적자로 인정하였다. 나아가,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군사적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에게 오리엔트의 광대한 영토를 나누어 줌으로써 로마인들의 신망을 잃었다.


안토니우스는 BC 31년 9월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대패해 이집트로 도주했다가 자살하였고,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이집트에까지 밀어닥치자 클레오파트라 역시 자살을 택하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더라도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 7세는 팜 파탈이기 이전에 이집트의 여왕이었고, 왕위를 둘러싼 내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침몰해가는 이집트 제국을 살리기 위해, 로마의 실력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부단히 노력한 군주였다.

 

마타 하리(Mata Hari)는 본명이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라는 네덜란드 출신 무희로, 순식간에 유럽의 사교계를 흥분시켰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며 이중스파이로 활동하다가 결국 1917년 파리 교외에서 독일군의 간첩 혐의로 총살형에 처해진 비운의 여인이다. 참고로, 예명 ‘마타 하리’는 인도네시아어로 ‘태양’, 또는 ‘여명의 눈동자’란 뜻이다.


1차대전에서 독일군으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당한 프랑스가 내부의 불만을 돌리기 위하여 마타 하리를 무리하게 간첩으로 몰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편, 중국의 주나라 유왕은 아무리 애써도 웃지 않는 미녀 포사(褒姒)의 태도에 애를 태우다가 제후들을 상대로 한 거짓 봉화 놀이에 포사가 웃자 이를 반복하였다. 그런데, 막상 견융이 침입하여 봉화를 올렸을 때 제후들이 아무도 응하지 않는 바람에 왕은 죽고 포사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때 주나라는 낙양으로 도읍을 옮겨 동주(東周)시대, 즉 춘추시대가 열리게 된다.


중국에서는 위 포사를 비롯하여, 은나라 주왕을 몰락하게 만든 미녀 달기(妲己), 춘추시대 월나라 미녀로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바쳐져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西施), 삼국지연의에서 최고 권력자 동탁과 양아들 여포 사이에 싸움이 나게 한 초선(貂蟬), 당나라 현종의 후궁이 되어 나라를 소용돌이에 빠뜨린 양귀비(楊貴妃) 등이 팜 파탈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미녀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왕조가 여인 한 명에게 놀아나 멸망에 이르렀다는 식의 설명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조선의 팜 파탈
조선에서는 연산군 때의 후궁 장녹수(張綠水), 광해군 때의 상궁 김개시(金介屎), 숙종 때의 장희빈(張禧嬪), 명종 때 실권자 윤원형의 첩인 정난정(鄭蘭貞) 등이 팜 파탈로 거론된다. 다음은 장녹수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연산군 8년 11월 25일).

 

「장녹수는 가난해서 시집을 여러 번 갔으며, 마지막에는 제안대군(예종의 아들)의 노비로 들어가 그곳에서 대군의 노비와 혼인하여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 창기(娼妓)가 되었다. 얼굴은 보통 정도이나 춤과 노래를 잘했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 아이와 같았다.

 
연산군이 듣고 기뻐하여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총애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종4품)으로 봉했다.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장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며 상과 벌을 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렸다. 김효손은 그 형부이므로 높은 관직에 이를 수 있었다.」

 

장녹수에 대한 이런 기록은 역사의 패자 연산군에 대한 기록이므로 상당히 왜곡,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남녀 차별이 심했던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 여성들이 왕조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큰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오히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며 차별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조선 양반들이 ‘여자들이 설쳐서 나라가 망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며 이들의 역할을 과장하고 인격을 헐뜯은 것은 아닐까.
 

팜 파탈의 실상과 허상
2022년 개봉한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 1992년 개봉한 미국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유력 용의자인 여성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빠져진행하던 수사를 중단하고 사건을 덮어버리는 장면이 공통되게 나온다.

 
그러나 살인사건이라는 중요한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가 용의자의 매력에 빠져 진실을 은폐하고 상대와 놀아난다는 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대개 형사는 2인 1조로 일하고 살인사건은 팀 수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실시간으로 상관에게 보고하고 지휘 감독을 받으며, 언론의 집중취재를 받는 상황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조선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조연이었을 뿐, 시대의 흐름을 좌우하는 주연인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팜 파탈로 거론되는 여성들의 삶 대부분이 그녀들의 실상과는 거리가 먼, 왜곡·과장된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마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동양에 대한 동경으로 표출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근저에는 힘의 우위에 있던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깔려있던 것처럼.

이주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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